제1차 세계대전 part2. 숨겨진 이야기

제1차 세계대전 part2. 숨겨진 이야기

‘낙후된 제국의 기술 전쟁’ –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의 참담한 병참 실패

1914년 전쟁이 발발했을 때, 유럽의 강대국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자원과 산업력으로 빠르게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다른 강대국들과는 달리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었다. 바로 산업력의 후진성과 병참 시스템의 낙후였다. 오스트리아-헝가리는 내부적으로 10개 이상의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제국이었고, 각 민족 간의 이해관계는 병참 시스템에도 영향을 미쳤다. 총알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재료는 제국의 서로 다른 지역에서 조달되어야 했고, 철도망은 체계적이지 못해 병력과 물자의 이동이 극히 비효율적이었다.

특히 1914년 갈리치아 전선에서 벌어진 러시아와의 전투에서 오스트리아군은 탄약 부족과 의료품 부족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일부 부대는 총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탄환이 없어 후퇴했고, 의료진이 부족해 부상병들이 방치되었다. 이는 병사들의 사기를 급격히 저하시켰고, 병사 탈영률이 유럽 최고 수준에 달했다. 무엇보다도 참담했던 건 장비였다. 19세기 말에 설계된 무기들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었고, 제대로 된 포병 장비도 없었다. 심지어 전차가 등장하던 후반기에도 오스트리아는 자체 전차 개발에 실패해 독일의 기술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제1차 세계대전의 진정한 ‘기술 격차의 희생양’이었다. 이 비효율적인 병참 시스템은 제국 해체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이후 중앙유럽의 질서 재편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벨기에의 무명의 저항’ – 벨기에 참호전의 민간인 정보망

제1차 세계대전의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는 참호전이다. 그러나 이 참호 뒤편에서 벌어진 민간인의 비밀 전쟁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특히 독일군에 점령된 벨기에에서는, 무력하지 않았던 시민들의 비무장 저항 운동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1914년 독일은 쉬리펜 계획에 따라 벨기에를 침공했다. 그러나 이 작은 나라는 의외로 강력하게 저항했고, 독일군은 수도 브뤼셀과 앤트워프 등을 점령한 후에도 민간인들의 끊임없는 정보전에 시달려야 했다. 특히 벨기에 여성들은 전선의 참호 근처에서 독일군의 병력 이동, 보급 경로 등을 감시해 연합군에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그들은 평범한 세탁부, 간호사, 심지어 수녀의 모습으로 활동하면서 비밀 정보망을 유지했다. 일명 “화이트 레이디즈 네트워크”라고 불리는 이 조직은 영국과 프랑스의 정보기관과도 협력했다.

1916년, 한 유명한 여성 스파이인 가브리엘 페티트는 독일군의 기지 좌표를 연합군에 제공했고, 그 결과 중요한 독일 병참 거점이 폭격당해 수천 명의 병력이 전선에 투입되지 못했다. 그녀는 결국 체포되어 총살당했지만, 이후 벨기에에서는 ‘국민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이런 보이지 않는 저항의 물결은 단순한 국가 수호의 상징을 넘어서, 전쟁이라는 거대한 기계에 맞서 싸운 인간의 의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이야기로 남아 있다.

‘흑인 군인의 그림자 전쟁’ – 서부전선의 아프리카 병사들

유럽 백인 병사들의 참호전 또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전선에는 수많은 비유럽 출신 병사들이 참전했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아프리카 식민지 출신이었다. 프랑스는 전쟁 초기부터 서아프리카와 북아프리카의 식민지에서 수만 명의 흑인 병사들을 강제로 징집했다. 그들은 참호전에서 가장 위험한 작업 중 하나인 야간 기습공격이나 지뢰 제거 같은 극단적인 임무를 맡았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 이들은 거의 역사에서 지워졌다. 승전 파레이드에도 참석하지 못했고, 프랑스 본토에서는 ‘문명에 기여한 영웅’이 아니라 ‘식민지의 도구’로 치부되었다. 일부는 전쟁 중 프랑스 시민의 거주지에 배치되자, 현지 주민의 항의로 철수되기도 했다. 심지어 전후 복지에서도 차별은 극심했다. 백인 병사들은 연금을 받았지만, 흑인 병사들에게는 지역별, 인종별로 금액이 차별되었고 일부는 아예 지급조차 받지 못했다. 이로 인해 1920년대에는 식민지 반란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최근에야 프랑스 정부는 이들에 대한 공식적인 추모 행사를 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겪은 고통과 차별은 오랫동안 역사의 그림자로 남아 있었다. 그들은 제1차 세계대전의 숨겨진 ‘영웅’이었다.